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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아버지를 보내며
아버지를 보내며
윤*구| 2017-11-08| 조회수 : 5545
아 버 지 를    보 내 며


'동생이 있을때 얼른 담배 한 대 태우고 올께!...'

아침부터 내내 아버지곁을 지키고 있던 형은
병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며 문을 나섰다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눈을 감은채 
아버지는 가만히 누워 계셨다 
지난밤 그르렁 그르렁 아버지를 괴롭히던
가래끓는 소리도 없이 편안한 모습이었다
창문에 달린 하늘 한 번 올려다 보고
내려오던 시선이 침대옆에 있던 모니터를
지나치다 문득
100에서 60..40..20..변하는 숫자를 보았다
곡선 그래프의 폭이 좁아지더니 이윽고
위 아래 변동이 없는 직선으로 길게 이어져갔다
설마!...
다급하게 비상벨을 누르고 
형에게 전화를 했다
바로 앞 선반위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이런!...전화기를 놓고 나갔네...'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계셨다
모니터의 숫자는 이미 0으로 나와있고
침묵같은 긴 직선은 끝도 없이 이어져갔다
'아!..아버지...'

아버지는 매일같이
캄캄한 새벽 산책길을 걸으며
내가 일하는 학원의 1층 출입문을
덜컹 한번 흔들어 잠금 상태를 확인하셨다
새벽녘까지 수업준비를 하던 나는
소리로 아버지를 알았다
아침을 드시자 바로 밭에 가셔서
하루종일 풀을 뽑고 물을 주고
애써 가꾼 호박이며 감자며 고추며
신선한 야채들은 언제나
우리집에 먼저 배달되었다
'아휴~! 더울땐 나가지 마시라니까요!...'
흙묻은 투박한 바가지에 담긴
아버지의 선물은 언제나 나의
볼멘 소리로 다시 채워져 보내졌다

그러던 아버지가 다리 통증을 호소했다
아침 일찍 정밀촬영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도
담당의사는 결과를 말해주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가 되서야
'정확히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서울의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고
허벅지에 암제거 수술을 하셨다
그러나 얼마뒤 다시 재발된 암은
이미 허벅지를 꽉채웠고
'더이상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의사는 치료가 불가함을 말했다

가슴졸이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허벅지의 생살을 찢고 터져나온 암덩어리는
지옥의 아귀처럼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당황한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이 병원 저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상처를 본 당직의사들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서울 큰 병원으로 가셔야 해요!..'

가뭄이 극성이던 여름날밤에도
세찬 장대비가 차를 뒤흔들던 날에도
수술을 집도했던 서울의 큰 병원
담당의사는 진통제 몇알 쥐어주며
번번이 돌려 보냈다
'더이상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절박함으로 가슴이 미어지는데
아버지는 휴게소 우동 한그릇
국물까지 잘 드시고
집에와서 마당부터 싹싹 쓸어내셨다
저만치 서있던 나는
마른 먼지에 눈물이 났지만
어머니는 불편한 걸음으로
아버지입에 약을 털어넣으며
'당신이 잘 먹고 이겨내면 되는겨!..'
하고 말했다
TV에서는 말라붙은 저수지 바닥에
물고기들이 타죽어가고 있었다

'의식은 말짱하신데 고통이 얼마나 크시겠어..'
처음으로 공감해주는 분이 생겼다
의료원 이충범과장님의 배려로
아버지는 세번의 수술과 세번의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네 번째의 수술이후 아버지는 기력을 잃으셨다
벌써 몇 달간을 밤잠 못주무시며
병수발하시는 어머니의 정성에도
미음은 커녕 물 한모금도 넘기기 힘들어하셨다
편하게 누워있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안아서 들어올려 기저귀를 갈고
앙상해져가는 얼굴과 다리를 물수건으로 닦고
업어서 차에 태워 병원을 다니면서
내가 커가며 이렇게 살갑게
아버지를 대한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어린 나를
안고 업어서 키우셨던 아버지
이제 내 등에 아버지를 업고 대문을 나서는데
가슴에서 눈물이 났다
병든 아버지는 아이처럼 가벼웠다 

반백의 나이가 되었어도 그저
막내자식이었을뿐인 내게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효도를 가르쳐주셨다
밤잠 못자고도 헌신적인 늙은 어머니가
아버지곁에 계심에 안도하다가도
문득문득 걸려오는 어머니 비상전화에
마음졸이던 나는
몇 달째 설사병을 앓고 있었다

병원 침대에 누운
아버지는 아무런 기력이 없으셨다
'엄마..이제 집에 들어가 주무세요...'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병실에 들어서는데
아버지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르렁 그르렁 끓어 오르는 가래에
숨이 막혀 자꾸만 가슴을 쥐어뜯었다
간호사를 불러 가래를 뽑아보았지만
저 깊숙이 폐를 채우며 올라오는
그것들을 막아내지 못하는듯
아버지의 괴로운 호흡은 계속되었다
어머니를 집에 보내고
편한 츄리닝으로 갈아입었던 나는
불길한 예감에 옷을 다시 갈아입고
새벽녘 서울사는 형에게 연락을 했다
'아버지 상태가..내려와야겠어..'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햇살에 힘을 얻은듯 호흡소리가 편해지셨다
이윽고 도착한 형에게 자리를 교대하고
집에서 눈을 붙인 나는
출근전 잠깐 병실을 찾았다

'아!..아버지...'
모니터에 멈춰진 숫자와
더이상 숨을 쉬지 않는 아버지...
병실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아버지의 두 손을 잡고
몸을 숙여 보청기를 끼고 계신
왼쪽귀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고생 많으셨어요...
아버지...정말...고마워요..고마워요'
참았던 눈물이 흘러 내렸다
50년동안 내 아버지로 살아주신 세월
그 고단함에 마음이 아팠다
늘 공부가 하고 싶었던 아버지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힘겹게 병과 싸우시다 가신 당신이
가여워서 눈물이 났다
당직의사가 사망선언을 하자
형이 들어서며 아버지위에 무너졌다
'엄마...잠깐 와보셔야겠네요..'
애써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아이처럼 아버지 손발을 어루만지며
어머니가 서럽게 우셨다
한평생을 함께 하신 아버지를 떠나보내는데
그 마음을 감히 짐작이나 하겠는가...

말끔히 면도까지 하신 아버지가
입고 계신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었다
먼길 가실 생각에 황금빛 지페한장
옷깃에 살짝 넣어드리니 마음이 편했다
발인하는 일요일 아침
영구차앞에 이충범과장님이 계셨다
담당했던 환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려는
그분의 손을 잡고 어머니는 눈물을 쏟으며
감사인사를 드렸고 나는 보았다
과장님의 눈이 붉어지며 얼른
뒤돌아서시는것을...
나는 이런 모습을 일찍이 본적이 없고
누구에게서 들어본적도 없다
의사와 환자이기전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뜨거운 정이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가꿔놓았던
산속의 새집으로 들어가는 날
바람은 잔잔했고 햇살은 따스했다
'밖에 나오니 좋으시죠 아버지?..
안에서만 계셨던 갑갑함을
바람에 실어 햇볕에 날려 보내세요'
제사를 지내는데 문득
잠자리 한마리 떡위에 날아 앉는다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하시던 시루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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